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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과 입산

들바람 2011. 10. 7. 19:02

 

 

등산과 입산

                        - 이원규

 

 

산그늘에 얼굴을 가리고 펑펑 울기에 참 좋은 날입니다. 죽기에도 좋고 누군가 태어나기에도 좋은 봄날입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기 바랍니다. 다만 등산(登山)은 말고 입산(入山)하러 오시길.

 

등산은 인간의 정복욕과 교만의 길이지만 입산은 자연과 한몸이 되는 상생(相生)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경쟁하듯이 지리산 종주를 하다 보면 보이는 것이라곤 앞 사람의 발꿈치뿐이지요.

 

하지만 입산의 마음으로 계곡의 바위들을 타고 흔적도 없이 오르는 사람에게는 몸속에 이미 지리산이 들어와 있습니다.

 

유정무정의 뭇 생명들이 곧 나의 거울이자 뿌리가 되는 것이지요.

 

누구나 정복해야 할 것은 마음속 욕망의 화산(火山)이지 몸 밖의 산이 아닙니다.

 

산에 들어갈 때엔 바람의 방향을 따라 흥얼흥얼 천천히 가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사람도 살고 산짐승도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바람결에 나의 냄새와 노래를 실어 보내면 반달곰이나 독사들도 알아서 길을 내주지요.

 

처음엔 향기로운 풀꽃을 따라 갔다가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계곡 물을 따라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곳에서 그대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