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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버지된 자의 손은 궂은일과 마른일을 가리지 않는다

들바람 2013. 1. 3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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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자식을 먹이고 입힐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일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 엄시헌이 한적한 국도에서 교통사고 뺑소니를 당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엄종세는 다 먹은

밥상을 치우는 기분으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경북 김천으로 향한다. 엄종세의 가족은 남강이 보이

경상남도의 산골마을에서 살다가 뇌성마비에 정신지체, 자폐, 간질을 앓는 큰아들 엄종석을 치료하기 위

해 서울로 이사 왔다. 사내가 제일 참기 어려운 고통은 처자식들이 굶는 걸 보는 거라고 생각하는 엄시헌

은 가족을 먹여 살리고 병든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철공소, 난전 좌판, 신발공장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

을 하다가 공사판으로 흘러들어간다. 그러다 엄시헌은 집에 들르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고 언제부터인가

거의 집에 들르지 않게 된다.  엄종세는 어릴 때 어머니의 말을 받들어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으나, 어른이

된 후로는 일 년에 한두 번 아버지를 만났을 뿐이다.

 

아버지가 일하던 공사장 함바집에 들른 엄종세는 가게 안의 금고를 보다가 아버지가 가끔 전화를 걸어 뜬

금없이 '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일구삼공오삼팔, 맞지?' 하던 것이 떠올라 그 숫자를 눌러 금고를 연다.

그 안에는 엄종세가 보낸 편지들과 아버지의 일기, 거액이 들어 있는 예금통장과 약 4억 원을 받을 수 있

는 보험증서 등이 있었다.

 

한편 엄종세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제방공사장에서 아버지를 만나 지금까지 가까이 지내온 장기

풍에게서 그간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듣게 되는데…….

아버지 엄시헌은 돈을 벌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살았고, 아들 엄종세는 곁에 없는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원

망하며 성장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아버지가 사고로 죽은 후 아들은 아버지의 삶을 추적해 나간다.
'아버지 된 자의 손은 궂은일과 마른일을 가리지 않는다.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는 아비의 손과 궂은일을 하

는 손은 별개가 아니다. 너도 이제 아버지가 됐으니 네 손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가리지 마라. 그리고 네 손

이 하는 수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마라. 아버지 된 자, 남편 된 자가 처자식을 먹이고 입히는 일은

칭찬이나 상 받을 일이 아니다. 네 처자식이 네 평생의 상장임을 잊지 마라.'

아들 엄종세가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아버지 엄시헌이가 보낸 축하 편지다. 편지는 소설 속 '아버지

엄시헌의 삶' 을 축약한 것이자 이 소설을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여기서 아버지의 궂은일은 정직한

노동을 포함해, 비굴한 일, 비도덕적인 일까지 포함한다. 아버지 엄시헌은 처자식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면한 땀을 흘릴 뿐만 아니라 비굴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비도덕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다.

 

어느 시대이건 아버지는 가족의 중심에서 수많은 역할을 부여받고 그걸 숙명으로 여기고 살아간다. 그들

게는 가족의 인생이 곧 자신의 인생이기에 자존심을 기꺼이 버리고 정의도 쉽사리 포기한다. 그러나 일

가족, 둘을 모두 만족스럽게 해내기란 녹록지 않기에 많은 아버지들이 가족을 위해 일을 택하는데, 아이러

니하게도 그 순간부터 가족과는 멀어지게 된다. 그 둘은 결국 하나의 테두리 안에 있음에도 하나를 위해 나

머지 하나를 택하는 순간 그 둘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엄종세의 아버지 역시 젊은 시절 가족을 위해 일에 몰두하지만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가족들에게서 소외되

고, 다른 가족이 아버지의 존재가치를 깨닫게 될 즈음에는 이미 가족들에게서 너무 멀어진 후다. 그래서

종세는, 적당히 벌더라도 가족과 함께 사는 게 더 소중하다며 그러지 못한 아버지의 삶을 부정하려 한다.

그러나 장기풍이 들려준 이야기와 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통해 엄종세는 아버지가 삶에 최선을 다했음을 알

게 된다. 아버지가 병든 아들을 치료하고 똑똑한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남들의 손가락질을 감수하며 공

장에서 벽돌을 지고 함바집에서 술을 팔았고, 그래서 가족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이

다.  

 

 



'엄시헌의 정의'는 가족을 굶지 않게 하는 것이며 아픈 내 자식이 치료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똑똑한 아

원없이 공부시키는 것이었다. 내 처자식 건사하는 일이 국가보다 앞서는 일이고 사회 정의보다 더 소중

일이었기에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기꺼이 그것을 지켜내는 삶을 택했다. 엄시헌은 가족이 아니라

일(돈)을 택하므로서 자연스럽게 가족들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아들은 이러한 아버지를 평생 원망하며 성

장했다. 이러한 아버지를 아이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까? 오랫동안 아버지와 갈등을 겪고있는 고

등학교 2학년인 동주에게 물었다. (동주는 아직 글쓰기가 미숙하여 글이 매끄럽지 못하다.)  

 

문)엄시헌은 세상에서 가장 참기 힘든 고통이 ‘배고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가족들이 배고픔의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전 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아버지를 잘 살았다

할 수 있을까요?

 

답)엄시헌은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은 정말 대단하다. 자식들을 위해 일생을 다 바쳐 돈을 모았고 돈을 모

기 위해 악착같이 살았다. 자식들에게 많은 돈을 남겼지만 아버지로서의 태도로는 매우 잘못되었다. 아

들을 위해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돈만 벌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남들이 아버지와 노는 것을

러워했다. 아들에게는 아버지가 필요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런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엄시헌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은 대단하지만 아버지로서의 행동은 잘못되었다. 자식들은 이런

아버지 때문에 매우 힘들고 슬퍼했을 것이다.

 

 

문) 작가는 ‘아버지의 손은 궃은 일과 마른일을 가리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진정한 아버지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답)아버지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자식들과 아내를 먹여 살려야 할 의무가 있다. 즉 아버지는 경제적 능

력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버지들 중에는 돈만 벌어다 주면 전부라고 생각하는 아버지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의 말은 아버지의 역할은 돈을 벌어다 주는 것에서 그친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실상 아버지

역할은 매우 많고 중요하다.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은 가장으로서의 역할이고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있다.

아버지의 역할은 자식들의 인성교육 문제도 있다. 집안에서의 교욱문제는 어머니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

는다. 이럴 땐 아버지가 나서서 대신 교육을 시켜야 한다. 혼내기만 하라는 뜻이 아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보듬어주어야 한다. 자식이 힘든 일이 있을 땐 대화를 하여 자식의 일을 차차 알아가야 하고 옆에서 설움

을 들어주며 같이 어려움을 나누고 좋은 말 한 마디씩 해주는 것이 아이에겐 큰 위로가 될 수도 있다. 또

아버지로써 위엄있는 모습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평소엔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도 보여주어야 한다. 아버

지는 항상 위엄있어야 하고 무게만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다. 아버지는 밖에서 일하느라 자

들과 놀아줄 시간이 별로 없다. 하지만 가끔 놀아줄 때는 위엄있는 모습을 버리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좋다. 이 밖에도 아버지의 역할은 수없이 많다. 아버지들은 가장으로서의 역할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구

분할 줄 알아야 한다.

   

중언부언했지만 동주가 하는 말의 요지는 이렇다. '아버지의 역할은 가장으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아버지 고

유의 역할이라는 게 있다. 자식이 힘들 땐 보듬어도 주고 서러워할 땐 곁에서 들어도 주며 좋은 말도 해줘야

한다. 또 항상 위엄있거나 무게만 잡지 말고 아이들과 놀아줄 때는 아버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돈 버는 일도 중요하지만 자녀들은 아버지와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삶을 경멸했지만 종국에는 그런 아버지를 용납하고 아버지와 화해

한다. 동주 역시 새벽까지 책을 붙들고 읽어 내렸던 묵직함이 눈가에 촉촉히 베어 있었다. 늘 일 밖에 모르

는 아버지, 바쁘다는 이유로 마주 앉아 밥 한 끼 먹을 새가 없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아버지를 이

해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지점이 있다.

 

"돈버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자식이 힘들 땐 보듬어도 주고 서러워할 땐 곁에서

들어도 주며 좋은 말도 해달라. 항상 무게만 잡지 말고 아이들과 놀아줄 때는 아버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

왔으면 좋겠다. 자녀들은 항상 아버지와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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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내남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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